당연한 것

당연한 것

「承(쇼)」(닛케이BP사/2013년)의 취재와 제작 과정에서, 그리고 식년천궁으로 작년에는 자주 이세신궁에 참배했다.

감싸안는 듯한 신궁의 숲에서 느끼는 것과 여러가지로 신궁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그 때까지 막연하던 자신의 목숨에 대한 생각이 서서히 모양이 잡혀왔다.

자연 풍부함의 반대, 인간에게 편리하게 만들어진 도시부에 사는 우리들은 혼자라도 살 수 있다는 감각에 빠지기 쉬우며,

자기 한사람의 목숨을 따로 떼어내서 부여안고는 그것을 목숨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정말로 그런가.

생명체로서는 낳아준 부모가 있고, 그 부모, 그리고 또 그 부모와 선조가 없으면 자신은 없다.

쭉 연결되는 고리가 있고, 선조가 살면서 가꿔온 문화와 가치관이 있으며, 그것을 이어받아 지금 내가 살고 있다.

옆을 바라보면 이 세상의 인연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 인연은 다음 인연을 낳고, 같은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덕분에」라는 말로 일본인은 그것을 표현해 왔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전체로서의 것」이 목숨이며, 그것은 상기와 같이 시간도 공간도 걸쳐져 있고, 오히려 그 이외의 것은 없다. 그런 것인가?

그 목숨의 일부분을 따로 떼어내서 쓰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살고 있는 것이 우리들인가?



…… 어려워졌다.



연말이었는지, 영화 「(제로)그래비티」를 보았다.

우주공간에 홀로 남겨져 지구와의 관계를 상실하면 산소가 떨어지는 것 보다 먼저 절실한 고독에 절망해서 죽는 것은 아닐지 하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영화는 시사하는 바가 많아서 훌륭했다. 왜 일본어 제목에 제로가 붙어있는지는 의문이었기 때문에 괄호로 묶었다.)



그런데, 오늘, 2월11일은 건국기념일.

일본 고래의 달력으로 말하면 올해는 황기 2674년에 해당한다.



어렴풋이 생각하는 것은 계승되어온 소중한 것을 받아서 이웃 사람과 서로 나누고, 다음 세대에 전해주는 것이 사는 본래의 의미라고 하는 것.

일부분을 살고 있는 개인으로서의 목숨에 혹시라도 의미가 있다고 하면 그뿐일 것이다.

중심에 그것이 있어야만 우리들의 자유로운 생도 있을 것이다.



이노우에 다케히코

2014.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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